小堀遠州
도대체, 고보리(小堀) 엔슈(遠州)공은, 후루타(古田)織部에 차를 배우고, 거기에 따른 꽃을 살리는 감각도 자연스럽게 부양했습니다.
드디어 도쿠가와(德川) 삼대째 장군 이에미쓰(家光)에게 임명을 받고, 에도(江戶) 조(城)의 꾸며낸 일 도모유키(奉行)가 됩니다. 엔슈(遠州)의 꾸며낸 일은 에도(江戶) 조(城)에게 머무르지 않고, 침나무이궁, 니조조, 오사카성(大阪城)외 곡輸노수축등, 에도(江戶), 오사카(大阪), 교토(京都)를 이리저리 뛰어다녀 정원설계의 취업했습니다.
또, 장군에게 소망되어 큰 다과회등 다수열기, 차·꽃·정원·와카(和歌),그리고 서에 정, 정말로 현대로 말하는 멀티·아트 디렉터적 존재이었습니다.
에도(江戶)에게 머무르지 않고, 엔슈(遠州)의 명성은 널리 널리 알려지고, 엔슈(遠州)의 미의식·「 아름다움 녹」은 다도에 통한 사람/꽃인/가인(노래를 잘 짓는 사람)에게서 사랑받아, 공전의 유행을 낳은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특히) 엔슈(遠州)가 사랑한 「아름다움 녹」은 타치바나(立花)로 생화에 꽃꽂이가 이항해 가는 시대와 잘 겹치고, 화도 엔슈(遠州)의 꽃꽂이 확립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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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슈(遠州) 생화의 아름다움은 조정·무가사회에 사랑받은뿐만 아니라, 널리 대중에게 침투해 갔습니다. 이 것은 당시의 미디어인, 판화기술발전과 동시 값이라고 할 것도 있으면 생각됩니다.
또 동시에, 우키요에(浮世繪)판화(에도(江戶) 서민의 풍속을 그린 판화)에도, 화도 엔슈(遠州)가 아름다운 유창하고 아름다운 곡선미를 기록한 꽃꽂이의 그림이 자주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일본문화의 대부분이 확립한 문화 후미(文) 세이(政)의 시대가 되면, 정말로 엔슈(遠州) 꽃꽂이는 일본의 샅샅이까지 대유행한 것이었습니다.
浮世繪
19세기말에 유럽에서도 유행한 일본문화. 그 모양을 모사한 「우키요에(浮世繪)」에는, 자주 엔슈(遠州)류의 화도가 그려졌습니다. |
오늘 종가, 아시다(芦田) 가즈히사(一壽)씨는 「모습을 지어 て, 꽃으로 한다」라고 하는 선인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서 형을 주고, 자연이상의 자연인 듯한 아름다움을 살린다고 하는, 엔슈(遠州) 생화의 미의식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엔슈(遠州) 생화에는 많은 기술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특히) 「쐐기 외곡」이라고 말하는 독특한 기술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특징이라고 하고 있는 엔슈(遠州)가 대표적인, 기량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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